사진이라는 것이 그 특성상 시간성에서 벗어나서는 홀로 서기 어려운 허약 체질임을 늘 실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성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애를 쓴다.
남다르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시간성 밖의 그 드넓은 공간을 마음껏 누려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이다.
허버트 리드는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고 했다. 음악의 추상성에 대한 찬사이겠지만, 모든 예술은 근본에서 자유를 추구한다는 뜻일 것이다. 사진 역시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한 자유로움은 생리가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구체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진의 한계성으로 해서 그런 ‘자유’는 더 강한 유혹일 수도 있다. 물론 유혹에 몸을 맡기는 것은 자칫 한량의 놀이로 전락하기 쉬운 함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진의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질 때 이는 가능성을 향한 새로운 작업으로 기능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진은 그 근본에서 시간 예술임과 동시에 빛의 예술이다.
사진이 ‘빛의 예술’이라는 말은 빛이 사진을 찍는 단순 도구를 넘어, 빛 자체의 자율성을 인식하고 ‘빛’을 하나의 독립된 소재로 존중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오로지 빛에 의해서라야 시각적 의미가 표현, 전달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타의 매체로는 구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가능성이 이 빛에 있는 것으로 그것이 사진이요, 특히 흑백사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 빛의 자율성은 곧 영상의 자율성으로 이어지거니와 ‘영상의 자율성’은 순수사진의 또 하나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영상의 자율성은 ‘시각적 의미’를 통해 완성도를 보다 높일 수 있다.
의미라면 ‘문학적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지만, 그러나 들리고, 보이고, 느껴져도 언어의 좁은 폭으로는 도저히 바꿔낼 수 없는 청각적, 시각적 체험이나 육감을 대개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처럼 말이나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의미가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무한한 자연의 스펙트럼 같은 것도 있지만, 그러한 단순 경험 말고도 빛과 사물이 만들어내는 전혀 새로운 ‘시각적 의미가 있다. 언어만이 아니라 어떠한 매체로도 표현 불가능한 시각적 체험을 말하는 것으로, 아직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빛의 세계, 카메라와 사물이 빚어내는 시각적 ‘비기시체험(non-dejavue)’이라 할 일종의 육감적 체험을 뜻한다. 소위 ‘현대사진’으로의 길을 여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내 목표의 하나로, ‘시각적 의미’에 매달리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5년 11월 ‘밝은 방에서’, 한정식